Rup.L의 글상자

'느낌을 공유하기 위한 작품으로서의 글쓰기'의 가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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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느낌을 담는 그릇

글을 쓴다는 것은 뭔가를 머릿속에서 풀어낸다는 것이다. 글일 수도 있고 프로그래밍일 수도 있고 음악일 수도 있다. 모두 완성되기 전까지는 확인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음악도, 미술 작품도 머릿속에 있을 때는 그저 하나의 아이디어이다. 남에게 표현할 수 없는, 나만의 무언가이다. 남에게 표현하기 위해, 같은 느낌을 위해 작품을 만든다. 그 작품이 좋은 작품이거나 나쁜 작품이거나 남에게 느낌을 주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있다는 것을 올바르게 풀어낸 것일까? 그것을 보면서 내가 머릿속에서 느끼던 것을 외적으로 느끼게 될 수 있을까? 표현을 잘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느낌을 공유하는 것이다. 아무리 진짜같이 그린 그림이라고 해도 의도가 그 장면이 인상깊었어서 그 장면을 보는 시간을..

무너진 섬과 두 개의 소원들

2024.04.16 우리동네 뒤에는 오래된 성이 있다. 그 성은 무너진 지 꽤 오래 되었는데, 그 안에 멀쩡해 보이는 방이 쇠창살 안으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발굴이나 복구가 되지 않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이야기에 의하면 그곳에는 마법사가 살고 있었는데, 무너지기 전부터 살고 있었는지, 무너지고 나서 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무너지고 나서 한동안 잡초가 자라고 완전히 폐허가 되도록 아무도 가지 않은 것은 그 마법사 때문이라고 했다. 마법사는 그 성이 무너지기 전에 성의 어릿광대였다. 축제 때 평민들이 성에 초청받아서 들어가 음식들을 먹고 있으면 신기한 새들과 동물을 보여주고, 마술 공연을 하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읽는 수완도 매우 좋아서 어린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먹을 것 보다도 ..

글쓰기는 습관이다.

글을 한군데에서 쓰는 것은 중요하다. 언제 어디서든 무슨 도구를 가지고 있든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어떤 취미든 어떤 기술이든 그렇듯이 같은 도구로 같은 시간에 반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전자잉크는 생각보다 느리기도 하고 제대로 반응하게 하려면 잔상도 많이 남지만 글을 쓰는 느낌은 확실히 강하게 든다. 그래서인가 새하얗게 빛나는 모니터보다 확실히 글쓰기에 집중하기에 더 좋다. 오늘 낮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오후에 커피숍에서 책을 읽다가 문득 전자책을 꺼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읽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글쓰는 느낌이 좋아서 전자책에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니라 오전에 장문의 글을 전자책을 사용해서 작성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작은 책방

어젯 밤, 맥주를 마시면서 '작은 책방'의 비닐을 뜯었다. 표지에 있던 그림에는 작은 소녀가 책이 가득 쌓여 있는 벽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는 광경이 그려져 있었지만 신경을 전혀 쓰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제목의 '책방'은 서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집 안에서 다락처럼 책을 쌓아 놓은 방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 방에서 나온 이야기들과 현실과 상상이 모여 그 책의 단편소설이 만들어졌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읽다가 발견한 놀라운 사실. 옛날, 초등학교 때 읽었던 '보리와 임금님'이 바로 이 책이었다. 보리와 임금님은 옛날 소년소녀문학전집에 실려 있던 것만 읽고 단행본으로 나온 건 읽지 않았는데, 이 책에서는 그 단편이 왕과 보리밭이라고, 조금 더 스토리와 연관성 있게 새로 번역해 놓았다. 아마 일본에서 번역했던..

전자책 리더로 글쓰기

전자책(BOOX)를 가지고 글을 쓰는 것을 보고 옆에서 많이 놀랐다. 단순히 안드로이드 기계일 뿐인데 각종 앱 설치가 되기 때문에 전자책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리디북스와 바꾸어 쓰기로 한 지 일 년이 넘었는데, 사실 그녀가 사용한 기간은 그 전에 더 길었겠지만, 그 동안 이 기계를 책을 읽는 용도 외에는 상상도 해보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책보다 내 글이 훨씬 작기 때문에 메모리는 물론이고 파일 시스템 역시 앱 내부에 저장되는 거라면 문제가 없다. 다른 앱에서도 열어볼 수 있는 확장자를 사용하는 앱들은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처럼 용량이 커서 너무 느려서 사용하기 힘들 것이지만, 단순히 자체 확장자가 있는 퓨어라이터 같은 경우는 메모장과 마찬가지로 가볍기도 하고 아까도 말했지만 몇 백 페이지가 되는 책들에..

블로그를 하는 이유

요즘은 대세가 영상물이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도 그렇고 유튜브, 유튜브 쇼츠까지, 한 번에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뉴스나 낚시성 채널은 제외하고 말이다. 한때는 블로그가 그런 역할을 하곤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블로그를 하라는 책이 지금 유튜브에 대한 책보다 아마 훨씬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흘러가는 법이듯이, 같은 위치를 SNS가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 블로그로 돈을 번다는 이야기가 약간 수그러든 것이 나에게는 반갑다. 유튜브도 아무 생각 없이 혼자 즐기려고 올려놓은 것이 대박이 나는 일이 있듯이 블로그도 얼마든지 혼자 즐기려고 글을 쓰고 올릴 수 있는 공간이다. 물론 이 예는 대박이 났기 때문에 내가..

서재를 만들었다.

서재를 만들었다. 만들었다기보다는 마련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원래 있던 공간을 조금 치워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방으로 만든 것이니까. 방 전체가 그런 것도 아니고 고작 책상 하나를 그렇게 사용하는 것뿐이다. 책상을 깨끗이 비우고 맥북과 USB 스탠드와 블루투스 스피커를 놓았다. 조용한 음악을 틀고 스탠드를 켠다. 낮에는 은은하게, 밤에는 햇빛처럼 강하게 내리쬐는 불빛으로 책을 읽는다. 책상이 창문에 붙어 있기에 낮에는 굳이 스탠드가 없어도 글자를 읽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구름에 햇빛에 이따금씩 가려졌다가 돌아올 때, 그 명암의 차이를 조금이나마 덜 자극적이게 하기 위해서 스탠드를 켜 놓는 것이다. 맥북 위에는 블루투스 키보드가 있어서 글을 쓰고 싶으면 키보드만 내 앞으로 가져다 놓는다..

무선 키보드

휴대폰은 예전에 USB-C 타입으로 충전 커넥터가 바뀌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확실히 컴퓨터와 휴대폰의 경계마저 허물기 시작했다고 실감하게 된 것도 그 즈음이 아닌가 싶다. 심지어 새 휴대폰에 데이터 전송을 위한 USB to USB-C 어댑터(휴대폰을 구입할 때 들어 있는 데이터 전송용 USB 케이블을 양쪽 모두 핸드폰에 연결할 수 있도록 USB 포트를 USB-C 포트로 비꾸어 주는 어댑터)가 들어있는 것을 보았을 때조차 그 의미까지는 알지 못했다. 한편, 집에서 외장 키보드로 사용하는 제품이 몇 있다. 고가일 수록 블루투스 타입이고 저렴하면 자체 동글이 있는 경우였다. 컴퓨터를 구입하면 따라오는 제품 역시 열이면 열 자체 동글을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블루투스 키보드는 몇 가지 사용하고 있는데 애플 키..

글쓰기에 대한 이미지

나에게 글쓰기라는 단어만 던져주고 생각나는 게 있냐고 물어보면 아마도 목장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목장. 그것도 버려진 목장. 한때는 수많은 동물을 거느린 부자가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실감할 정도로 넓은 풀밭과 그 한쪽에 쳐진 나무로 된 울타리. 그리고 풀밭에는 소와 말이 먹는 풀들과 이미 오래 지나서 치고 올라오기 시작하는 잡초들이 뒤엉켜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의 목장은 이런 평화로운 모습이 다가 아니다. 울타리 안에 높이가 3미터에 이르는 웅장한 콘크리트 벽이 하나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콘크리트 벽은 마치 페인트를 묻힌 손가락으로 쓴 것처럼 아무렇게나 많은 단어들이 쓰여 있다. 한 쪽에는 '글짓기의 모든 것', '글 쓰는 법', '글쓰기의 원리' 같은, 글쓰기를 위해 뭔가..

오늘 하루

다섯시 반 알람에 눈을 떴다. 어제 두 시가 다 되어 잠이 들었지만 '노르웨이의 숲'을 중간밖에 읽지 못해 그래도 눈을 뜨고 커피를 내렸다. 어차피 연속해서 세 번째 읽는 것이지만 그래도 세번째까지 끝내야 다른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읽을 때마다 일본 특유의 온몸을 휘감고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상황극을 해야 하는 그런 느낌이 있다. 그런 와중에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은 남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조종할 수 있다는 성취감 아니면 무력감 뿐일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것을 다각도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방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은 무력감을, 지나치게 상황에 맞게 행동하거나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지 않는, 극단과 극단을 오가는 모습은 일본에서만 느낄 수 있는 해방감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