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은 예전에 USB-C 타입으로 충전 커넥터가 바뀌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확실히 컴퓨터와 휴대폰의 경계마저 허물기 시작했다고 실감하게 된 것도 그 즈음이 아닌가 싶다. 심지어 새 휴대폰에 데이터 전송을 위한 USB to USB-C 어댑터(휴대폰을 구입할 때 들어 있는 데이터 전송용 USB 케이블을 양쪽 모두 핸드폰에 연결할 수 있도록 USB 포트를 USB-C 포트로 비꾸어 주는 어댑터)가 들어있는 것을 보았을 때조차 그 의미까지는 알지 못했다.
한편, 집에서 외장 키보드로 사용하는 제품이 몇 있다. 고가일 수록 블루투스 타입이고 저렴하면 자체 동글이 있는 경우였다. 컴퓨터를 구입하면 따라오는 제품 역시 열이면 열 자체 동글을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블루투스 키보드는 몇 가지 사용하고 있는데 애플 키보드도 그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키가 눌리게 되고, 키가 눌리면 키보드가 켜지면서 휴대폰과 자동으로 연결되는 통에 갑자기 ㄹ루투스를 끄거나 가방에서 키보드를 꺼내지 않고는 문자도 보낼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집에서 사용하는 무선 키보드'가 되었다. 그 외에는 타자기 모양으로 된 기계식 키보드가 두 개가 있다. 돌돌 말아 다니는 롤링 키보드는 연결도 연결이지만 키 간격이 불규칙해서 생각보다 오타가 많이 나는 통에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기계식 키보드를 더 주문해 놓은 상태이다.
키보드는 글을 쓰는 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글은 써 놓으면 내 팬이 아닌 이상 더 읽을 다른 사람은 없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글이 한두 편일 때보다 막상 쌓이니 내가 쓴 글이지만 읽는 것이 아주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쓴 글이 쓰레기가 아닌 한은 글을 쓰는 그 시간자체를 즐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생각이 나는 대로 계속해서 써 나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내가 평소에 말이 많은 타입의 사람이 아니어서 조리있게 말하거나 적어도 살마과 대화를 하는 경험은 어쩔 수 없이 글을 통해 쏟아내는 방법 외에는 연습할 길이 별로 없다는 생각도 여기에 한몫 했지만 신기하게도 글로 풀어내면 거기에 따라서 생각도 막다른 길처럼 허공으로 사라지는 대신 계속해서 가지를 치며 나아간다는 신기한 경험이 계속 새로워진다는 매력을 깨달은 것도 여기에 한몫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밖에서는 컴퓨터를 가지고 다니는 것보다 키보드만 하나 가지고 다니면서 스마트폰으로 글을 작성하는 것이 낫다. 거창하게 노트북을 여는 것보다 간편하고, 성능도 전혀 떨어지지 않으니까. 그래서 일단 주문한 기계식 키보드가 도착하기 전에 어떻게 해야 하나 하다가 한가지 호기심이 생겼다. 핸드폰을 구입할 때 받은 USB to USB-C 어댑터가, 혹시 신호 컨버팅도 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동글이 컴퓨터에 전달하려는 신호를 내 핸드폰도 해석해서 키보드 신호로 인식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은 합당해 보인다. 아마도 3년만 지나면 당연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동글은 어차피 USB 허브에도 인식이 되니까 그 허브에 USB포트가 하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어댑터는 당연히 인식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벌써 인식이 될지는 다른 문제이다.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변화가 너무나도 빨라서 핸드폰에서도 쓸 수 있다고 광고를 한 것이 아닌 한은 모든 기술이 과도기에 불과하고, 목적지가 어디인지, 목적지가 아니라 최소한 중간 경유지가 어디인지조차 불분명한 현재는 그런 식으로 동작하지 않더라도 불평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꽂으니 바로 연결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테스트삼아 블로그 앱을 열고 제목을 터치해서 커서를 옮기고 키보드로 '테스트'라고 치자 그대로 제목이 들어갔다. 그리고 백스페이스를 눌러 '테스트'라고 쓴 것을 지우고 '무선 키보드'라고 제목을 바꾸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대로, 그 키보드로 여기까지 써 내려왔다.
동글이 있으니, 동글을 꽂을 때까지는 절대 저절로 글자가 쳐진다거나 스크린 키보드가 비활성화될 일은 없다는 장점은 있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은 충전이 불가능하다는 단점도 있다. 아무래도 허브를 사용하는 편이 낫기는 하다.
확실히 시대가 좋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글이 흘러 넘치고 온라인마저 글로 가득 채웠다. 서점은 점점 대형화되어 가고 있고, 작은 서점 역시 계속해서 새로운 책이 드나드는 시대이다. 그리고 그 글을 작성할 길도 점점 넓어진다. 혹자는 너무 넓어져서 글이 가치가 없어지고 가치 있는 글을 찾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시대조차 좋은 글을 찾는 것은 힘들다고들 말해 왔다. 기술이 좋아지는 만큼 글을 읽는 안목을 올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지 않을까? 글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인데, 그 사실을 불평하는 것이 과연 무엇의 해답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이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에게 주고 싶은 글이나마 쉬지 않고 적는 것은 그 축복에 대한 보답이자, 나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에게 알려준 지식을 내가 사용하지 않으면 그 지식을 알아낸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무언가 유용하지만 손도 댈 수 없는 나의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무 이유없이 자제력만을 강요하는 저주이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쓴다. 이런 간단한 이유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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