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시 반 알람에 눈을 떴다. 어제 두 시가 다 되어 잠이 들었지만 '노르웨이의 숲'을 중간밖에 읽지 못해 그래도 눈을 뜨고 커피를 내렸다. 어차피 연속해서 세 번째 읽는 것이지만 그래도 세번째까지 끝내야 다른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읽을 때마다 일본 특유의 온몸을 휘감고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상황극을 해야 하는 그런 느낌이 있다. 그런 와중에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은 남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조종할 수 있다는 성취감 아니면 무력감 뿐일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것을 다각도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방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은 무력감을, 지나치게 상황에 맞게 행동하거나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지 않는, 극단과 극단을 오가는 모습은 일본에서만 느낄 수 있는 해방감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스토리 안에 온전히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등장인물들이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은 든다. 그리고 판타지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지금 내가 가진 것을 파악하고 환경 안에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은 어쩔 수 없이 감정이입을 이끌어내기 마련이다. 제3자의 눈으로, 물론 1%도 비슷한 상황에 처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의 객관화된 타인으로서 거리를 두고 적당한 고독감을 즐겼다.
아침에는 그래도 구름 사이로 해가 비쳤지만 오후에는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점심시간에 음악을 들으며 책은 다 읽고 음악에 푹 빠져 있다가 다시 일을 했다.
옆자리에 앉은 직원이 책 표지를 보더니 '그거 야한 책 아니예요?'라고 하길래 아니라고 했다. 뭔가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걸까. 성적인 이야기는 여러 번 나오지만 야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기분과 관심에 주인공의 모든 신경이 집중돼 있어서 성행위의 묘사도 묘사에 치중한 것이 아니고, 매 순간 그렇게까지 최선을 다하는 주인공도 아니었기에, 모든 행동, 모든 사물이 도구였고 세상을 보는 렌즈였기에, 어떠한 묘사가 나와도 그저 소설 속의 주인공들일 뿐이었다. 그래도 그 부분만 떼어서 읽었으면 야했을까 싶지만 그러기에는 또 그런 부분들은 너무 짧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묘사에 치중하지도 않았으니까. 단지 어색하게 '마스터베이션'이라는 단어가 자꾸 걸렸다. 일본인들은 그렇게 쓰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일본인들이 쓰듯이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긴장도 아니고 그저 실낱같은 희망만을 붙들고 끝까지 가는 책도 드물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희망의 끈도 마치 오래된 실처럼 툭, 하고 끊어졌다. 하지만 그뿐이다. 주인공의 삶은 계속되고 책 한 권을 통틀어 주인공을 스쳐 지나간 모든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지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차까지 걸어오는 길에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바뀌며 우산을 흔들어 댔다. 이게 현실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이런 상황 역시 '비를 피해 차로 급히 걸었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되어 있을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생각상자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선 키보드 (0) | 2021.09.10 |
---|---|
글쓰기에 대한 이미지 (0) | 2021.09.09 |
좋은 생각이 났다. (0) | 2021.09.05 |
비가 올 듯한 어느 나른한 오후 (0) | 2021.09.05 |
키보드 테스트 (0) | 2021.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