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p.L의 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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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상자/에세이

서재를 만들었다.

RupL 2021. 9. 11. 16:42

서재를 만들었다. 만들었다기보다는 마련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원래 있던 공간을 조금 치워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방으로 만든 것이니까. 방 전체가 그런 것도 아니고 고작 책상 하나를 그렇게 사용하는 것뿐이다. 책상을 깨끗이 비우고 맥북과 USB 스탠드와 블루투스 스피커를 놓았다. 조용한 음악을 틀고 스탠드를 켠다. 낮에는 은은하게, 밤에는 햇빛처럼 강하게 내리쬐는 불빛으로 책을 읽는다. 책상이 창문에 붙어 있기에 낮에는 굳이 스탠드가 없어도 글자를 읽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구름에 햇빛에 이따금씩 가려졌다가 돌아올 때, 그 명암의 차이를 조금이나마 덜 자극적이게 하기 위해서 스탠드를 켜 놓는 것이다. 맥북 위에는 블루투스 키보드가 있어서 글을 쓰고 싶으면 키보드만 내 앞으로 가져다 놓는다. 한 쪽에는 항상 '월든'이 있고 지금은 줄리엣, 소설을 읽고 있다. 구입한 지는 이미 몇 년 되었지만 내가 고른 책이 아니어서 이제껏 읽지 않고 한쪽에 처박혀 있었다. 하지만 읽다 보니 첫 챕터부터 몰입하게 되는 엄청난 책이었다. 진하게 내린 커피와 함께 이따금 고개를 들어 창밖의 나무들을 보다 보면 다시 책의 내용이 머릿속을 힘차게 흘러간다. 

우리집은 4층이어서 적당히 나무 꼭대기가 보인다. 다른 건물들이 눈앞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지만 적어도 백 미터는 떨어져 있는 덕분에 하늘과 햇빛마저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오후가 되면 살랑거리는 바람에 나뭇잎들이 빛이 나고 그것을 한순간 넋놓고 바라보다 다시 커피 한 모금을 맛만 보다시피 마시고 다시 책을 향해 고개를 묻는 것이다.

엔야의 곡들은 조용한 곡과 힘찬 곡, 화려한 곡이 번갈아 가면서 나오면서 책의 속도와 어우러져 책상을 한 편의 춤사위가 벌어지는 영화 장면처럼 만들어 준다. 10여 년 간 잊고 있던 음악과 함께 집중하는 독서이다. 나는 독서를 원래 이렇게 해왔다는 것을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나 자신을 되찾은 듯한 느낌이다. 마치 오랜만에 칼을 손에 쥔 세오덴처럼 나역시 오랜만에 나 자신으로 돌아온 것 같다. 그리고 제 자리를 찾았다는 생각이 드니 이제서야 욕심이 난다. 함께할 인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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