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p.L의 글상자

'느낌을 공유하기 위한 작품으로서의 글쓰기'의 가치를 지향합니다.

생각상자/꿈 이야기

무너진 섬과 두 개의 소원들

RupL 2024. 4. 17. 18:05

2024.04.16

우리동네 뒤에는 오래된 성이 있다. 그 성은 무너진 지 꽤 오래 되었는데, 그 안에 멀쩡해 보이는 방이 쇠창살 안으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발굴이나 복구가 되지 않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이야기에 의하면 그곳에는 마법사가 살고 있었는데, 무너지기 전부터 살고 있었는지, 무너지고 나서 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무너지고 나서 한동안 잡초가 자라고 완전히 폐허가 되도록 아무도 가지 않은 것은 그 마법사 때문이라고 했다.
마법사는 그 성이 무너지기 전에 성의 어릿광대였다. 축제 때 평민들이 성에 초청받아서 들어가 음식들을 먹고 있으면 신기한 새들과 동물을 보여주고, 마술 공연을 하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읽는 수완도 매우 좋아서 어린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먹을 것 보다도 그 사람의 입담을 들으러 오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병이 들어 죽기 전에, 그 어린아이 중 하나와 약속한 일이 기억이 났다. 지난 해 축제에서 올해 축제 때 그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서 앞으로 나와 마술을 도와줄 수 있게 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는 성주에게 부탁하여 자신의 죽음을 3월 축제 이후에 알리도록 했고, 그가 죽은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열린 3월 축제는 정상적이지만 그가 없어 다소 쳐진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그 꼬마는 축제에 와서 광대를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혹시 숨었나 싶어 돌아다녔는데, 자신도 어떻게 했는지 모를만큼 맹랑하게도 3층의 성주의 방이 있는 곳 근처까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올라가고 말았다. 3층의 계단 바로 옆에는 광대의 방이 있었다. 광대는 의사의 역할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주가 급할 때마다 방을 점점 자신의 방과 가까운 곳으로 옮긴 끝에 같은 층까지 온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광대가 자신의 병은 고칠 수 없다고 하자 바로 수긍했던 것이기도 했다.
자기도 모르게 3층에 도착한 꼬마는 방 안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 광대의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시간이 없으니 빨리 들어오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광대와 관계가 있으리라 믿고 바로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커다란 구 모양의 투명한 수정이 빛나고 있었고, 소원을 세 가지를 빌 수 있는 수정구슬이지만 내가 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나를 썼으니 너는 두 개의 소원을 빌 수 있다는 것이었다. 꼬마는 신기해서 광대에게
"어디있어, 광대야? 보고싶어."
그러자 이상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아니, 그런 소원은 빌 면 안돼. 광대는 이제 볼 수 없다. 다른 소원을 빌어. 하지만 여기서 빌 필요는 없어. 나는 듣고 있을 거니까, 자정 전에만 말하면 돼."
꼬마는 그제서야 약간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달아아기로 했다. 그래서 문을 열고 연회장으로 가려고 했지만, 헤매며 온 탓에 길을 찾지 못했다. 얼마나 당황했으면 방금 그 방을 찾기 직전에 올라왔던 계단을 기억하지 못한 것이었다. 계단의 반대쪽으로 헤매던 꼬마는 1층에서 본 것 같은 문을 얼른 열고 달아나려고 했고, 문을 활짝 열자 하녀들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경비병들이 그를 붙잡았고, 호의로 성으로 초청한 평민들이 3층까지 헤집고 다닌다고 생각한 성주는 그를 죽이기로 했다.
꼬마는 지하 감옥에 갇혔다. 그때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느지 모른다. 비명소리가 들렸고, 경비병들이 잡았고, 거칠게 밀치고 소리를 지르고, 다시 성주가 와서 밀치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겁에 덜덜 떨기만 할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평민들 역시 불똥이 튈까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분노에 길길 날뛰는 성주의 모습은 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고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꼬마는 지하 감옥에 있었다. 하지만 아직 저녁 시간도 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햇빛도 들고 배도 고프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광대가 불렀다는 말에 
"광대는 죽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꼬마는 이것을 '광대를 죽였고, 너도 죽일 것이다'라고 이해했다. 꼬마는 광대의 방에서 들은 말을 기억해내고 소원을 빌었다.
"광대의 복수를 해 줘."
그렇지만 광대는 살해를 당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복수가 없었다. 그렇게 꼬마는 소원을 허비해 버렸다. 밤이 되었는데도 딱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자 꼬마는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자신도 죽을 걸 알면서 다시 소원을 빌었다.
"성이 무너져서 성 안에 있는 사람이 모두 죽게 해줘."
그렇게 성이 무너졌다. 지하감옥의 쇠창살은 성 밖에서 들여다보였고, 그 앞에서 경비병이 지키고 있긴 했지만 어슬렁거리지만 않으면 흘끔흘끔 들여다보거나 소리를 듣는 건 가능했다. 게다가 그 꼬마는 예의도 바르고 일도 잘 한다고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에 가엾게 생각한 사람들이 잘 있는지 눈으로만이라도 보고 지나가곤 했는데 다들 그 소년이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고 했고, 몇 명은 저 소원을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갑자기 도시에 지진이 일어났다. 몇 개의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몇 명 죽고 다쳤지만, 무엇보다 피해가 큰 것은 성이었다. 신기하게도 성이 무너졌지만 모두 사람이 있었던 방만 골라서 무너진 탓에 폐허 안으로 사람이 없었던 방은 멀쩡하게 들여다 보였다.
관광객 중에 그 폐허로 몰래 들어간 사람이 있었다. 원래 그 폐허를 보기 위해 다른 곳을 구경한다고 속이고 온 것이기는 했다. 그는 폐허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반지하처럼 박혀 있는 방으로 들어가 복도를 따라가면 문이 열려 있는 곳을 찾았다. 그는 그곳에서 본 것을 잡지에 실어 그 곳은 유명해졌는데, 그가 워낙 무서운 장소로 써 놓았기 때문에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와 보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그는 그 방에서 왠지 벽이 흐릿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소원을 두 가지를 빌 수 있다고 해서 죽지 않게 해 달라고 했더니 지금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고 소원이 하나 남았다는 것이었다. 지금 살아 있는 것이 소원을 들어준 것이라는 말에 약간 소름이 돋았다. 죽을 수도 있었다는 말인가. 목소리는 다시 오늘 자정 이 빛이 사라지기 전까지만 소원을 빌면 반드시 이 방이 아니라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 날은 2월 12일이었다.
그는 숙소에 와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말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을 한 번 보고 싶은데."
그러자 목소리가 마치 그 방에 있었을 때처럼 들렸다.
"보여주겠다. 소원은 끝났다."
그는 광대가 병으로 홀쭉해진 모습을 보았다. 왠지 슬픈 모습이었다. 그리고 곧 사라졌다. 
그 사람은 나도 만나 보았다. 그 사람이 말했다.
"엄밀히 말해서 나는 제정신이 아니야. 네가  그 소원이 어디까지 들어지는지 봤어야 해. 하지만 너한테도 돈을 받지 않으면 소원을 빌게 할 수 없어. 너무 위험하니까. 나는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도 기적이야."
그가 말했다. 
"언제나 사람들에게는 소원을 하나만 빌 수 있다고 이야기해야돼.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갑자기 그 사람이 그러는거야. '살아 있는 것을 보여줘.' 맹세코 나는 그때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말이 들리면서 어떤 좀비영화나 귀신 영화에서 본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을 보았어. 그건 그 능력이 사악한 것이라는 증거야."
"근데 어떻게 살아있어요?"
나는 웃으며 물었지만 그가 대답했다.
"그 사람이 다행히도 자정이 다 된 시각에 소원을 빌었어. 그리고 괴물한테 죽었지. 난 몰랐어. 그런데 그 괴물이 나도 찾아 온거야. 놀라서 창문으로 뛰어내렸지만 어느새 문앞에 있었어. 미친듯이 달렸는데, 자정이 되자 사라져버렸어. 정말 말 그대로 촛불을 훅 불어서 끄듯이 꺼진거야."
"그게 소원을 하나만 비는 것과 상관이 있어요?"
"내가 먼저 한나를 빌거든. '오늘 비는 마지막 소원에서 저를 보호하소서.' 라고."
"근데 해마다 와서 그걸 하는 이유가 뭐예요? 그냥 부자 되게 해달라고 빌면 안되나요?"
그가 대답했다.
"그렇게 빌었더니 알려준 방법이 이거야. 두번째 소원으로 이 방법을 쓰지 않고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했더니 다른 소원을 빌라는 말만 계속 하더라."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물었다.
"부자세요?"
그가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야, 니네집 옥상에 있는 헬기는 내가 무슨 돈으로 샀을 것 같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