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p.L의 글상자

'느낌을 공유하기 위한 작품으로서의 글쓰기'의 가치를 지향합니다.

생각상자/에세이

글은 느낌을 담는 그릇

RupL 2024. 4. 17. 21:15

글을 쓴다는 것은 뭔가를 머릿속에서 풀어낸다는 것이다. 글일 수도 있고 프로그래밍일 수도 있고 음악일 수도 있다. 모두 완성되기 전까지는 확인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음악도, 미술 작품도 머릿속에 있을 때는 그저 하나의 아이디어이다. 남에게 표현할 수 없는, 나만의 무언가이다. 남에게 표현하기 위해, 같은 느낌을 위해 작품을 만든다. 그 작품이 좋은 작품이거나 나쁜 작품이거나 남에게 느낌을 주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있다는 것을 올바르게 풀어낸 것일까? 그것을 보면서 내가 머릿속에서 느끼던 것을 외적으로 느끼게 될 수 있을까?
표현을 잘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느낌을 공유하는 것이다. 아무리 진짜같이 그린 그림이라고 해도 의도가 그 장면이 인상깊었어서 그 장면을 보는 시간을 공유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지 캔버스를 채우고 싶어서였다면 아무리 실제처럼 그린 그림이라고 해도 느낌을 공유할 수 있을까? 이미 자신에게는 공유할 느낌 따위는 없으니 말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 무엇을 공유하고 싶은 것일까?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야기가 떠올랐을 때 내가 그 이야기로부터 느낀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똑같이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단지 손가락이 움직이기 때문에 써지는 것은 남의 책을 베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완벽하게 묘사하더라도 읽는 사람이 똑같이 느낀다는 보장은 없다. 공유하고 싶은 그 느낌을 불러오는 뭔가를 써야 한다. 세상의 씁쓸함을 느꼈다면 이야기는 행복해 보이는 껍데기를 뚫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세상이 아직 따뜻하다는 느낌을 공유하고 싶다면 세상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세상이 따뜻하다는 표현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세상의 온도를 음미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야 하는 것이다. 그 느낌에 대한 글은 필요 없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에 대한 글은 필요 없다. 나조차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를 누구한테 한단 말인가.
오케스트라가 악보를 보고 연주하듯이, 독자는 글자를 보고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 연주하는 소리와 글의 내용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야말로 글을 쓰는 사람이 가볼 수 있는 가장 먼 곳이다. 소리를 듣고 느끼는 것과 글을 읽고 느끼는 것은, 감상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악보를 정확하게 그리듯이 독자가 느낄 수 있는 것을 세밀하고 정확하게 조준해서 써야 한다. 
아무 느낌도 없는 글은 아무 느낌 없는 곡과 같다. 그런 곡을 발표하는 것이 실례이듯 그런 글은 독자를 모욕하는 길이다. 내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고 하면서 얼굴에 먹칠을 하면 쓰나. 
느낌. 느낌에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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